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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스포츠


  아시안게임이 요즘 화제다. 그야말로 스포츠의 2010년이다. 난 아시안게임 안 본다. 재미가 없다. 그래서 아시안게임 중에도 여전히 SBS스포츠에 채널 고정 중.

  저번 명절 때 고향갔을 때 아버지께서 여자축구 시합을 언제 하는지 물으셨다. 난 대답 못했다. 모르기도 하고 관심도 없고. 내가 축구 게임에서 기대하는 그런 흥분감을 여자축구에선 못 느껴서 관심을 안 둔다. 음복 때 얘기를 해보니 아버지께선 김연아나 박태환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 한국 사람이 박태환, 김연아에 대해 관심이 있고 올해 선전을 한 여자축구대표팀 얘기를 하는 것이 놀랍진 않다. 하지만 그게 우리 아버지라면 좀 다르다.

  스포츠미디어 쪽에서 일하는 걸 꿈꾸던 청소년기의 나는 스포츠 시합 시청을 무지하게 좋아했었다. 엑셀이 없던 시절 혼자서 직접 야구기록지를 만들 정도였지. 그런데 야구나 축구 중계를 보는 게 쉽지 않았다. 아버지께서 내가 공부에 도움 안 되는 엔터테인먼트를 즐기는 걸 무척 싫어하셨다. 그런 걸 보다가 걸리면 담배를 피우다 들킨 것처럼 욕을 먹었다. 당신께서도 그런 걸 안 보시기도 하고. 월드컵조차 안 보실 정도였으니. 아버지의 그런 점 때문에 나는 좀 맺힌 게 있다. 지금도 명승부로 회자되는 삼성과 해태의 한국시리즈 15회 연장 무승부 게임 때 TV중계를 시청하다가 아버지한테 호되게 욕먹은 걸 아직도 기억할 정도니. 그 때 내 꿈이 스포츠 경기장에 직접 가서 구경하는 거였는데 아버지한테 가고 싶다는 말을 도저히 꺼낼 수가 없었다. 지금도 야구장이나 축구장에서 부자끼리 관전하는 걸 보면 마음이 짠하다. 그렇다고 아버지를 미워하는 건 아니다. 이 어른의 인생, 나이대, 체험한 문화, 그런 걸 이젠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거니까.

  아버지 흉보려고 쓴 글이 아닌데 본론이 너무 늦었다. 아무튼 그랬던 아버지가 요즘은 스포츠 중계를 꽤나 챙겨보는 것 같아서 놀랐다. 그렇다고 스포츠 그 자체에 흥미가 생기신 건 아니고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그렇듯이 국가 대항전을 감정이입하면서 보시는 것 같다. 3S가 어쩌고 민족주의가 저쩌고 하는 진부한 얘기를 다 떠나서 우리 어른이 저런 걸 즐기는 걸 보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저런 재미라도 있어야지. 박태환이나 김연아가 이 어른에게 잠시나마 '의제' 아들 혹은 딸이 되는 것에 대해 나는 아무런 불만없다. 원래는 나도 스포츠와 국가주의의 퓨전에 대해 좀 안 좋게 보는 편이고 지금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종목도 아닌데 대한민국이 1등한다고 열광하지는 않는데 더 이상 그런 식의 스포츠 즐기기에 대해 비판하지도 않는다. 성장하면서 내가 부모님께 가졌던 불만들을 디즈니 만화나 헐리우드 가족 드라마 속 '의제' 부모를 보면서 충족시켰듯이 우리 부모님도 키우는 재미를 전혀 주지 못하는 못난 자식들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를 '의제' 자식들을 보면서 해결할 필요가 있다. 그런 엔터테인먼트를 우리 어른에게 주어진다는 점이 고마울 정도다. 돈이 생기면 고향 집에다가 좀 큰 테레비 하나 넣어줘야지. 스포츠 채널 많이 있는 위성 달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