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기

악마를 보았다를 보았다.



  시네21에서 본 이 영화에 대한 이동진 기자의 단평은 '무엇'과 '왜'를 결여한 '어떻게'의 공허함이다. '마음산책'이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김지운 감독의 책에서 나오는데, 이 아저씨에겐 애초부터 '왜'가 없다. 그냥 이런 걸 한 번 만들어보고 싶어, 그래서 이걸 이렇게 저렇게 해보면 괜찮을 것 같아, 뭐 그런 식. 이 아저씨에게 창작의도를 묻는 질문은 왜 태어났냐고 하는 거랑 같은 거다. 한마디로 욕이란 얘기. 영화평론이 직업인 이동진 기자도 그 사실을 잘 알았던 것 같다. 그런 사람에게 이건 왜 없냐, 저건 왜 없냐, 그렇다면 왜 만든거냐, 는 식으로 집요하게 따지기 보다는 김지운 스타일 전반적인 것에 대한 아쉬움을 피력한 것 같다. 나도 뭐 비슷한 생각.
 
  인터뷰에서는 전혀 안 그런 척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지하게 많은 '무엇'과 '왜'가 보이는 영화가 봉준호 감독의 작품들인데, 그의 작품이 사회를 바꾸고 관객의 생각을 움직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내가 봉준호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영화가 나의 어느 부분을 바꾸어서가 아니다. 그의 영화들은 아주 멋진 '어떻게'들이 수많은 '왜'를 깔끔하게 방어하면서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무엇'과 '왜'을 왜 따지는가? 어떤 사람에겐 영화의 사회적 혹은 개인적 효용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나같은 경우엔 교훈이나 깨달음을 얻겠단 생각은 별로 없고 '무엇'과 '왜'와 '어떻게'가 맞아들어가는 게 영화에게 기대하는 것, 영화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김지운 감독의 작품은 언제나 2%씩 아쉽다. 달달하기는 한데 난 뜨끈하고 얼큰한 국물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이번 작품은 마음 먹고 '고어'를 하겠다고 간 것인데 잔인하고 쎄기는 한데 그래도 달달한 맛이 남아있다. 그게 내가 이 사람의 영화를 보는 이유니까 불만은 없다. 사실 이렇게 '어떻게'주의로 창작하는 사람들이 참 부럽다. 이런 사람들이 에너지가 가장 넘치고 창작작업도 정력적으로 하며 당사자의 직업에 대한 만족도도 높을 것 같다. 영화 보는 내내 박훈정 작가와 김지운 감독이 참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김지운 감독은 그렇다치고 박훈정 작가는 감독 입봉도 안 한 사람이, 분명 다른 사람에게 팔 생각으로 썼을 텐데 어쩜 이렇게 세일링 포인트가 하나도 없는 100% '어떻게'주의 이야기를 썼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