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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했을 때, 그 좋아함이라는 감정의 대상이 도대체 실질적으로 무엇인지가 참 애매해진다. 내가 좋아한다는 그 사람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나의 감각기관으로 느낄 수 있는 그 사람의 육체인가? 아니면 시각적으로 느껴지는 외모의 아름다움? 아니면 좀 내면적인 것일까? 성격이라든가, 윤리관 같은 거? 교양이나 학식? 가장 편리한 대답은 '복합적이다'라는 말. 물론 그 말이 정답이다. 어느 한 가지만이 정답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순위를 매겨보자. 이런 거야 결국은 진리의 '케바케'겠지만, 나의 경우엔 결국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곧, 그 사람의 세상에 대한 리액션, 선택을 해야하는 순간에서 어느 한 쪽을 고르는 방식과 그 근거, 매순간 그 사람이 따르는 원칙, 위급한 상황에서 내리는 결단의 .. 더보기
해리 파괴하기 우디 앨런의 를 봤다. 영화 정말 좋다. 우디 앨런의 말빨이야 원래부터 유명하고, 이 영화에도 정말 죽이는 대사들이 많다. 썰도 좋았지만, 영화적인 형식미도 적어도 내가 보기엔 아주 괜찮았다. 근데 영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이 영화의 주인공 해리는 꽤 유명한 소설가인데 자기 지인들의 별로 자랑스럽지 않은 모습을 아주 시니컬한 투의 글로 풀어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당연히 주위 사람들이 무지하게 싫어한다. 우연찮게 이런 영화를 본 오늘 아침, 지인이 자신의 책을 보고 이러저러한 얘기를 했다는 소설가 은희경씨의 tweet을 읽었다. 하하하. 그녀와의 마지막 만남에서 그녀는 랩탑을 들고 나타났다. 나와의 대화 중에도 틈틈이 타이핑을 하길래 뭐를 하냐고 물어봤더니 소설 같은 걸 쓴다고 했다. 아마.. 더보기
감정이라는 짐 & .... 오늘 브라이언 드팔마 감독의 를 보다가 주인공이 옛 연인을 찾아가는 부분에서 갑자기 울컥했다. 별로 머리는 쓰기 싫고 그렇다고 너무 방방 뛰는 거 보고 싶은 마음도 없어서 드팔마 형님 솜씨나 감상하자고 예전에 몇 번 봤던 를 택한 건데 방심하다가 의외의 부분에서 당했다. 어릴 때는 어떤 감정에 빠지는 과정에서 일종의 나르시즘 같은 것도 있었는데(어린 애들이 자기 우는 모습 셀카치는 거 꽤 이해간다), 이제는 내 속에 남아있는 감수성이 그저 불편할 따름이다. 한 2~30분 엄청난 슬픔과 답답함을 느끼다가 이제 좀 나아졌다. 하마터면, 또 그 사람에게 전화를 할 뻔 했다. 진짜 또 전화했다가 무슨 봉변을 당할라고 그러는지. 사람들이 나이를 먹으면 감수성이 무뎌지는 걸 안타까워하는데, 그게 다 이유가 있어서 .. 더보기
여름날 올 여름은 나라는 인간이 얼마나 비굴해질 수 있는 지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어휴, 진짜 아직도 그 때 생각만 하면 부끄럽다. 그래도 그런 비굴함이 있기 때문에 내가 지금 살아있는 것이다. 비굴하지 않으면서도 계속 살아갈 수 있다면야 그게 최상이겠지만, 나 좀 불쌍하게 여겨달라고 비굴한 소리하고 자위하고 그러면서 고비를 넘긴 것도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급할 때만 존나 굽히고 입 싹 닦지만 않는다면 나도 꽤 괜찮은 인간일 수 있다. 힘든 일 있으면 나한테 와라. 뭐 그럴 일 별로 있을 것 같진 않지만. 더보기
져주는 게 이기는 건가? 남자와 여자가 말싸움을 하면 대체로 여자가 이긴다. 여자가 대체로 남자보단 언어적 감각이 뛰어나서 그런 거라고 하던데. 나는 솔직히 그 사람보다 내가 말을 잘 한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 사람의 견해는 내가 보기엔 언제나 헛점이 무지하게 많았다. 그런데 그 사람하고 말싸움을 해서 이겨본 적이 없다. 막 논쟁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여기서 더 따지고 들면 남자답지 못하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하는 수 없이 백기를 들곤 했다. 웃긴 건, 그녀가 내게 수컷으로서의 실격을 통지한 후에도 그랬다는 거다. 이제는 뭐 남자다운 놈으로 보여봤자 나한테 돌아오는 거 하나도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다움을 조금이라도 유지하고자 입을 다물었다. 그녀와 영영 못보게 된지 꽤 되었는데도 가끔씩 화가 난다. 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