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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복수, 2009


복수
감독 두기봉 (2009 / 프랑스,홍콩)
출연 조니 할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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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기봉의 <복수>를 이제서야 보았다. 프랑스 쪽과 협업했다고 들었는데 이전 작품들과 크게 달라진 부분은 없다. 자니 할러데이가 나온다는 것 외에는 언제나 보아왔던 두기봉 표 액션물이다. 황추생과 좀 뚱뚱한 아저씨, 추신수를 닮은 젊은이 그리고 졸라 멋진 임달화 형님까지 두기봉 사단이 어김없이 총출동하고, 배경도 홍콩과 마카오의 좁은 골목들, 혼잡한 거리가 주이다. 

  내가 두기봉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한 작품 당 3~4차례 정도 나오는 죽이는 시츄에이션들 때문이다. <복수>에도 괜찮은 시츄에이션이 몇 개 있다. 총을 쏴서 자전거를 나가게 하는 거 괜찮았고, 마지막에 스티커를 붙인 나쁜 놈을 찾아다니는 시츄에이션도 좋았다. 그런데 시츄에이션의 창의성이 예전 작품만은 못했다. 중간에 자니 할러데이에게 단기 기억 상실증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데, 그 사실을 알리는 타이밍이 뜬금없었다. 정박으로 잘 나가다가 갑자기 엇박이 툭 튀어나오는 느낌이었는데, 기분 좋은 류의 엇나감을 통해 음악의 그루브 같은 게 창출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 엇박에서는 그루브를 느낄 수 없었다.

  복수하면 반사적으로 박찬욱의 복수 3부작, 그 중에서도 <올드보이>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한국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복수 영화가 바로 <올드보이>아닐까? 나는 <올드보이>의 화끈함에 반했다. 보는 사람의 정신을 쏙 빼놓는 그 엄청난 열기가 대단히 매력적이었다. 박찬욱 감독이 이제 그만 열내고 쿨 다운하라고 라스트 장면을 눈의 이미지로 덮어주었지만, 나는 극장을 나와서도 한참동안 식은 땀을 흘려야 했다. <올드보이>의 흥행 성적을 생각하면 그런 취향을 나 혼자만 가지고 있는 건 아닌 거 같다. 개봉 시즌에는 이 엽기적인 게 어떻게 히트를 하는지 의아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매운 음식에 열광하고 사우나에서 땀빼는 걸 즐기는 한국인 취향에 딱이었다. 

  두기봉이 <복수>라는 제목의 영화를 준비한다고 했을 때, 이 아저씨가 뭔가 뜨거운 걸 만들고자 하는 것 같다고 내멋대로 기대를 했었다. 두기봉만의 뜨거움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라고 잔뜩 기대를 했었는데 (안타깝게도 혹은 역시나) 두기봉의 <복수>는 미지근하다.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다들 복수를 일종의 밀린 업무로 여기는 것 같다. 하기는 해야 되는데 사실은 귀찮은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그래도 해야지'라고 나선다. 영화를 보는 와중에는 그들의 투철하면서도 뭔가 정상은 아닌 것 같은 프로페셔널리즘이 이상하게만 보였는데, 감상 후에 곰곰이 생각하면서 어쩌면 그 이상한 프로페셔널리즘이야말로 현대사회 혹은 현대인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나를 비롯한 많은 현대인들이 프로페셔널리즘에 대해 어느 정도는 동경심과 경외감을 가지고 있는데, 그게 세 발자국 정도만 떨어져서 보면 엄청 멍청한 행동으로 보인다. 그래도 한 업계에서 외길인생을 걸어온 남자답게 두기봉 감독은 '피곤하지만 할 건 해야지'쪽을 선택했다. 그래, 할 건 해야지.

  두기봉 감독은 <흑사회>시리즈 이후로는 작은 이야기들 위주로 만드는 것 같다. 화끈하게 갱스터 에픽 시리즈도 다시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