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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감정이라는 짐 & ....


  오늘 브라이언 드팔마 감독의 <칼리토>를 보다가 주인공이 옛 연인을 찾아가는 부분에서 갑자기 울컥했다. 별로 머리는 쓰기 싫고 그렇다고 너무 방방 뛰는 거 보고 싶은 마음도 없어서 드팔마 형님 솜씨나 감상하자고 예전에 몇 번 봤던 <칼리토>를 택한 건데 방심하다가 의외의 부분에서 당했다. 어릴 때는 어떤 감정에 빠지는 과정에서 일종의 나르시즘 같은 것도 있었는데(어린 애들이 자기 우는 모습 셀카치는 거 꽤 이해간다), 이제는 내 속에 남아있는 감수성이 그저 불편할 따름이다. 한 2~30분 엄청난 슬픔과 답답함을 느끼다가 이제 좀 나아졌다. 하마터면, 또 그 사람에게 전화를 할 뻔 했다. 진짜 또 전화했다가 무슨 봉변을 당할라고 그러는지. 

  사람들이 나이를 먹으면 감수성이 무뎌지는 걸 안타까워하는데, 그게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다들 그렇게 변해가는데 나만 감수성이 그대로면 정말 '나만 바본가'시츄에이션이 된다. 아무리 지 혼자 잘 살 것 같은 놈들도 그래봐야 결국 사회적 동물이므로 자신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타인이 없으면 사는 게 그저 외로워질 뿐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나는 감수성 부분에서는 성장세가 더딘 것 같다. 능력이 안 되어서 그러는 건지, 혹은 내 속에 그런 변화를 거부하는 무의식적인 고집이 있는 건지는 알 수 없다.

  영화 중에서 진짜 잘 세공된 장르드라마는 정말 사람의 감정을 쫙 끌어들이는 힘이 있는데, <칼리토>도 그런 류인지는 오늘 처음 느꼈다, 그냥 테크니컬한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아무튼. 그리고 여담인데 최근에 은희경 작가의 책을 읽고 있는데, 되게 유명하신 분인 거는 아는데 읽는 내내 손발이 오그라드는 순간이 많았다. 이런 측면에선 또 내가 메말랐네. 이걸 굳이 읽는 이유는 전적으로 그 사람 때문이다. 궁금한 거지. 근데 읽어보니 더 헷깔린다. 이렇게 오그라드는 글 읽는 걸 좋아하는 여자가 어쩜 그렇게 실생활에선 냉정한 건지 알 수가 없다. 사람들이 대중문화를 소비하면서 얻고자 하는 건 자기 안에 없는 어떤 것에 대한 내적 경험이 아닐까 싶다. 내가 느와르나 폭력 많은 거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 말이야. 그렇다면, 결혼상대로는 <세르비안 필름>이나 <호스텔>같은 거를 즐겨보는 여자를 찾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