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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리액션이 전부다.


  우리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평가한다. 그 결과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접근을 하고자 하고 누군가와는 거리를 둔다. 그 평가의 대상은 그 사람 자체를 본다고 하지만서도, 현대사회에선 역시나 '숫자'가 제일 영향력있는 참고자료가 된다. '숫자를 거짓말을 안 한다'라는 사고방식이 더 이상 소수 자본가만의 것이 아닌 시대가 되었으니까. 그렇지만 얘기의 말미에 가면 '그래도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는 명제를 다들 붙인다. 맞다. '제일'까지는 몰라도 사람이 상당히 중요한 건 맞는 것 같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는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는 걸까? 

  내 생각에는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은 거의 '리액션'을 보고서 인 것 같다. 액션은 대부분 계산해서 한다. 준비기간이 꽤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 액션을 하기 전에는 그걸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그러나 리액션을 계산해서 하기란 참 힘들다. 예능 프로를 봐도 머리가 빨리 돌아가는 엔터테이너들이 리액션을 잘 한다. 열심히 해도 타고난 순발력 없으면 못 한다. 누가 딱 치고 나왔을 때 타이밍을 놓치면 그건 더 이상 리액션으로 작용하지 않으므로 빨랑 판단해서 해야 한다. 또, 리액션은 통제하기도 참 힘들다. 거의 반(半)본능적으로 나오는 경우가 잦다. 
  
  예능 뿐 아니라 인생도 마찬가지다. 어떤 상황의 변화를 맞이하였을 때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바로 그 사람이다. 연애를 생각해보자.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그 현상은 인체 내 호르몬으로 인해 발생한다. 사람의 인체가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그 현상의 지속기간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어떤 이는 더 이상 어떤 호르몬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 닥쳤을 때 A라는 옵션을 택하고, 또 다른 이는 B를 택한다. 상황의 변화에 대한 리액션에서 누군가는 쿨 가이가 되고 또 다른 이는 순정파 혹은 찌질이가 된다.
 
  리액션이 무서운 게 이건 액션에 비해 통제가 힘들다. 상대방이 내뱉은 말이 당신의 아주 민감한 부분을 건드렸다고 하자. 그 사람이 당신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며 당신 인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아마 기분이 나빠도 결국은 참고 살려고 할 것이다. 그건 쉽다. 근데 어려운 건 그 말이 나온 순간에 내 기분을 잘 표현하는(혹은 들키지 않는) 것이다. 리액션이 안 좋았다면 나중에 아주 세련된 액션을 취해도 만회하기 쉽지 않다. 아마 상대방은 당신의 액션보다 리액션을 더 신뢰할거다. 리액션이 통제하기 힘든 만큼 가공 또한 쉽지 않단 걸 다들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매우 소중했으나 이제는 완전히 작살이 난 어떤 인연에 대해 생각하면서 가장 후회되는 게 나의 리액션들이었다. 액션은 소극적으로 하면서도 리액션은 또 무모하게 했다. 차라리 아무 리액션도 하지 않았다면 좋았겠다는 순간이 많았다. 액션은 만회할 기회가 있다. 액션이 시원찮아도 어쨌든 상대가 리액션을 해준다면 그 리액션에 대한 리액션을 잘 하면 된다. 그러나 리액션은 다르다. 리액션이 구리면 상대가 완전히 나에 대해 결론을 내버린다. 그러면 끝난 거다. 상대가 인내심이 있어서 또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지만 그것도 좋은 건 아니다. 리액션의 연속은 이 상호작용의 참여자들을 지치게 하기 때문이다.

  인간관계 잘 하는 사람들 공통점이 리액션을 적재적소에 한다는 것이다. 자기가 인간을 아주 잘 알고 관계맺기에 대해 완전 달인 수준이라면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리액션은 방망이 짧게 잡고 하는 게 좋은 것 같다. 액션은 '페넌트레이스'고 리액션은 '포스트시즌'이다. 전자는 빅볼 스타일, 마구마구 No Fear 스윙을 해도 되겠지만, 우리가 뉴욕양키스가 아닌 이상은 후자는 스몰볼로, 가끔 번트도 대고 공이 조금 안 좋다 싶으면 거르고 그렇게 가는 게 제일 좋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