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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어쨌든 활력을 찾았다.


  2007년의 가을이 다시 온 것 같은 기분이다. 그녀가 나의 열등의식을 마구 자극해준 덕분에 어쨌든 나는 다시 활력을 찾게 되었다. 다시 운동을 시작했고, 책도 다시 보게 되었고, 시험도 보러 다니고, 무엇보다도 계획이라는 걸 다시 하게 되었다. 내 안에 아직도 자기애라는 게 남아있기는 하나보다. 

  자기를 사랑하라는 얘기, '자기애'라는 단어(나는 이런 어휘가 존재한다는 걸 20대 후반에야 알았다)를 보고 들으면 (아직도) 뭔가가 딱 캐치되는 느낌이 없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자기를 사랑한다는 게 도대체 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고 자위를 하는 이미지만 떠오른다. 자신의 나체를 보고도 발기가 되는 사람이 있기는 한가?
  
  더 웃긴 건 내가 강한 자기애를 가진 사람이라는 얘기도 들었다는 사실. 정말? 나를 꽤 오래 보아온 사람이 한 얘기이니 말도 안 된다고 넘길 수만은 없었다. 아, 정말 그런 건가? 그런데 도대체 자기애라는 게 무슨 뜻이냐? 정말 난 모르겠다.

  그렇게 고민을 많이 해보았는데 잠정적인 결론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일에 충실한 삶을 사는 자세가 바로 자기를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것. 내가 원하는 것? 내가 매우 좋아하는 사람을 곁에 두는 것인데,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목표물을 교체하든지, 아니면 나를 바꾸든지, 둘 중 하나이다.

  일단은 전자와 후자 모두 가능성을 열어두고 살 것이다. 전자가 가능하다면 그것도 괜찮다. 후자도 배제할 이유는 없다. 두 가지 모두를 다 실행할 수도 있다. 그게 제일 좋은 것이겠지.

  각론으로 가자면, 나는 열등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 자기 중심이 확실한 사람이 될 것이다. 아, 이기는 습관도 있구나. 평생을 이겨본 적이 없이 살아서 이기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기는 삶은 좀 힘들 수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즐기는 습관이 있다. 최근 몇 년간 잠시 잊고 있었던 즐기는 습관을 다시 찾겠다. 그렇게 즐기는 삶이 시작되면 언젠가는 이기는 삶까지 나의 것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충분히 현재가 즐겁다면 굳이 이길 것도 없지만서도).

  지금 가장 시급한 과제는 모든 것으로부터 독립하여 홀로 서는 것이다. 집을 떠나 혼자 산지가 10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나는 경제적으로 부모에게 기대어 있지 않은가? 부끄럽지만, 가끔씩 서울에 집을 사줄 부모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이상야릇한 안도감을 느끼는 게 현재 나라는 사람의 수준이다. 그런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나의 두 다리만으로 땅 위에 제대로 설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정신적, 물질적 독립성의 부족이 바로 나와 그녀의 정신적인 수준 차이를 낳은 진짜 요인일 수도 있다. 최대한 빨리 이 문제를 풀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