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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전향을 모색하다.



1. 

  유물론이 뭔지 몰라도 유물론적인 인생을 잘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유물론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마르크스 책을 다시 사보는 건 뻘짓. 나는 이 사실을 종로 반디앤루니스에 도착해서야 깨달았다. 다시 집에 돌아오는데 차가 엄청 막히더라. 뻘짓하느라 헬스장도 못 가고. 젠장.



2. 

  살다 보면 정말로 못된 사람들을 볼 때가 있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이렇게 못되게 살면서 잘 사는 사람도 있구나, 나도 좀 덜 착해져야지 라고 마음을 먹는다. 그렇게 살다보면 또 되게 착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도 이렇게 착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다니! 그들을 보면서 좀 착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결론은 그냥 나는 일반인이라는 거. 세상에 못된 사람도 많고, 착한 사람도 많지만, 대다수는 그냥 나 같은 중도적인 일반 사람이겠지. 

  요즘 시대 분위기가 못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높은 거 같다. 어떤 흐름 같은 것이 있는데 단지 지금이 못된 사람들의 타이밍인 거 아닐까? 그 동안 대중이 착한(혹은 착한 척 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걸 지겨움을 느끼자 정부와 미디어가 여기에 발 맞추어 못된 사람들을 조명하는 것 같다. 사람들은 못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욕을 하면서도 동시에 그들의 모습에 닮아간다. 그래서 요즘은 다들 너도나도 못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솔직히 기분이 안 좋다. 나만의 대단한 정의론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보고 있기가 그렇다. 착한 사람들의 시대가 다시 왔으면 좋겠다. 아니면 착한 척 하는 사람들의 시대라도. 위선이라는 거 좋은 건 아니지만 요즘은 정말 너무들 대놓고 못된 짓을 하더라. 똥 싸는 건 좋은데 화장실 문은 좀 닫으라구. 냄새 나잖아.



3.

  그 사람에게 보내는 마지막 메시지에다가 '너를 만나면서 많이 배울 수 있어서 고맙다'라는 문장을 썼었다. 약 51%의 진심과 약 49%의 멋있는 척하려는 의도가 담긴 말이었다. 내가 이별에 대해 100% 쿨하고 이성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성숙한 인격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어떤 일을 겪으면 그 과정을 되돌아보며 뭔가를 배울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은 된다는 얘기다.

  그 사람과 나는 참 달랐다. 그 다른 점 때문에 나는 그녀에게 끌렸지만, 그것이 결국 발목을 잡았다. 서로의 다른 점 때문에 끌렸어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조금씩 서로를 닮아가야 결실(?)이 맺어지는 법이다.나는 그 사람과 나 사이의 간극을 좁히고 싶어서 있는 힘을 다해 그녀 쪽으로 달렸다...고 말하면 좀 과장이고 그래도 어느 정도는 끈기를 가지고 한 방향으로만 걸었다. 그러나 그녀는 나를 향해 다가오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서서히 지쳐갔다. 그녀의 눈에는 내 쪽이 그다지 좋아보이지 않았나 보다. 그렇게 보였다면 어쩔 수 없지(연애 초반에 그녀가 했던 말, "내가 현실적으로 생각했다면 오빠를 만나지 않았어."이 결정적인 대사를 그때는 그냥 웃어넘겼다).

  나는 그 사람이 있는 쪽이 참 좋아보였기 때문에 그쪽으로 가고 싶었다.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꼭 배워야 할 애티튜드가 그녀에게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지금에 충실하는 것, 오늘에 100% 집중하는 자세, '오늘주의'이다. 나는 지금까지 미래의 언젠가를 위해 하루하루를 살았고, 그녀는 매일매일 현재의 시간, 현재의 옆사람, 지금 할 수 있는 일과 누릴 수 있는 즐거움에 충실했다. 그런 자세가 낳은 결과? 그녀 쪽이 훨씬 좋다. 미래의 언젠가가 현재가 되었는데 나의 인생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사실 더 나빠졌다). 반면 그녀는 (내가 그 친구의 속마음을 들여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외부인의 시선으로 볼 때엔) 정말 괜찮은 인생을 누리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 구성원에게 요구되는 역량의 차이나 선천적인 능력 차이도 요인일 수 있겠지만, 이렇게 판이하게 다른 결과를 낳은 제1의 원인은 그 삶에 대한 태도일 것이다. 내가 오늘에 항상 충실한 삶을 살았다면 현재와 동일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지금처럼 마음 속에 피해의식을 담고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사람은 떠났지만, 그녀의 태도만큼은 계속 기억하면서 배워가려고 노력 중이다. 오늘 할 수 있는 일, 지금 누릴 수 있는 행복, 현재의 나, 바로 이 순간 만날 수 있는 사람들에 집중하는 것. 그 사람을 옆에 둘 수 있다면 더 빨리 제대로 배울 수 있을텐데. 아쉽다. 가끔은 그냥 친한 오빠와 동생 관계로만 남았더라면 나에게 더욱 유익(!)했을 것 같다는 후회도 한다. 그런 관계로의 인연을 지속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을 테니까. 그러나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그 사람이 나에게 특별한 존재로 다가오면서부터 비로소 그녀의 삶에 대한 태도, 그리고 나의 그것, 둘의 차이 등등을 진지하게 살펴보게 된 것이니 말이다.



  일요일이구나. 오늘 할 수 있는 걸 하자, 즐겁게.
  나는 씨발 존나게 행복한 새끼야~~!!